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 오전부터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였다.
이날 대구의 최고기온은 29.6도.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날씨에도 사람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가며 사저 앞을 지켰다. 사저 인근 쌍계오거리 등에는 윤 당선인을 환영하고 박 전 대통령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는 화환이 길게 늘어섰다.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 운집한 인파는 윤 당선인의 모습이 보이자 박수를 치며 “환영한다”고 외쳤다. 이날 오후 1시57분 윤 당선인이 탄 차량이 도착할 때는 사저 앞 인파가 1500여 명에 달했다.
윤 당선인은 사저 출입문 바로 앞에 차량이 멈춰서자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사저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유영하 변호사가 윤 당선인을 맞았다.
김영순(65·여·울산시)씨는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다가 윤 당선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응원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두 분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300여 명을 투입하고 차단선을 쳐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지난달 24일 박 전 대통령이 사저에 입주할 때는 한 40대 남성이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던지는 소동이 있었던 탓에 경호가 더욱 삼엄했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과 50분가량 대화를 나눈 후인 오후 2시51분 사저를 나섰다. 곧장 차량을 타고 다음 일정으로 향하는 듯했던 그는 2분 뒤 차량에서 내려 사저 앞에 모여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예정에 없던 인사에 인파들이 한꺼번에 윤 당선인 쪽으로 쏠리면서 한때 소란이 벌어졌지만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이날 윤 당선인을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는 윤 당선인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이 2016년 ‘적폐 청산’ 수사와 공소 유지를 진두지휘하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을 이끌어냈다는 이유에서다. 윤 당선인은 탄핵 정국 당시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던 이력이 있다.
‘사죄하고 명예회복하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던 50대 여성은 “윤 당선인이 지난 과오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본 일부 윤 당선인 지지자들이 항의를 해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의 대화가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박 전 대통령 측 지지자들의 ‘응어리’도 어느 정도 풀리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이날 사저를 찾은 이희순(47·경남 창녕군)씨는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불순한 사람들과 어울려 죄 아닌 죄를 짓게 됐는데 이제 고향에서 편안하게 쉬길 바란다”며 “윤 당선인이 박 전 대통령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보살펴주길 바란다”고 했다.
권영세 부위원장은 두 사람의 만남이 끝난 후 취재진과 만나 “윤 당선인이 과거 일종의 악연에 대해서 굉장히 죄송하다고 했다”며 “두 분이 대구와의 인연 등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을 했고, 취임식 부분도 윤 당선인이 정중하게 (참석을)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도 가능하면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유영하 변호사도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오갔던 대화에 대해 “(윤 당선인이) 대통령직을 시작하면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했던 일들을 섬겨서 잘 하고 업적에 대해서 설명도 하겠다고 했고,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감사를 표시했다”고 설명했다.